"北 인프라 개선 없이 주민건강 개선 없다"... "北, 국제적 기준에 맞춰야 ODA 수혜 가능"

'제1차 남북 보건복지 민관협력 포럼' 참석자들(사진=SPN)

북한의 보건의료 체제가 제대로 작동하려면 공적개발원조(ODA)를 통해 북한의 전반적인 인프라를 개조해야 하며, 북한이 국제적 기준에 맞춰 ODA 수혜국이 될 수 있게 남한이 파트너로서 훈련의 장을 제공해야 한다는 제언이 나왔다.

남북 보건의료 협력 전문가들이 27일 오후 서울 중구 웨스틴조선호텔에서 열린 ‘제1차 남북보건복지 민관협력포럼’에서 1990년대 중후반부터 2000년대까지 이어진 ‘1기’ 대북 보건의료 활동의 경험과 교훈을 토대로 2018년 이후 ‘2기’ 대북 보건의료 활동 방안에 대한 다양한 의견을 제시했다.

■1기 대북 보건의료 활동 경험 공유… “북한의 진정한 필요 ≠ 북한의 요구사항”

통일보건의료학회 이사장 역임하고 있는 전우택 연세대학교 의과대학 교수는 “1기에 이뤄진 대북 보건의료 지원 활동의 경험들은 우리에게 많은 보람과 함께 질문도 남겼다”며 “전문적인 시각으로 볼 때 북한이 갖고 있는 진정한 필요와 북한이 남한에 요구하는 사항이 전혀 일치하지 않는 순간처럼 느껴질 때도 많았다”고 회상했다.

이어 “△북한의 낙후된 1차 의료를 발전시킬 것인지와 북한이 요구하는 3차, 4차 전문 의료기관을 지어줄 것인지 △전문 인력 개발능력 함양에 재원을 투입할지와 북한의 요구대로 병원 건물에 재원을 투입할지 △모니터링, 효과 평가 등과 관련된 북한의 협조와 투명성에 의문이 생기면 그 이후 어떻게 진행해야 할 것인지 △2005년 파리 선언의 원칙을 얼마나 충실히 지켜야 할지” 등의 고민을 공유했다.

■北, 지속가능한 개발협력 위한 시스템 구축 중시… “대북 보건의료 협력 조율-지원 기구 필요”

전 교수는 “북한은 ‘긴급구호적인 일회성 인도지원’으로부터 ‘지속가능한 개발협력 추진’으로 정책 기조를 바꾸겠다고 2005년에 공식적으로 천명했다”며 “돈과 물자를 지원받는 것에서부터 인력개발과 시스템 구축을 더 중시하게 됐다”고 말했다.

이어 “이렇게 되면 1기 동안 남한의 각 기관이 각자 북한과 접촉해 사업 내용을 선정하고 일을 해나가던 방식은 일정 부분 한계를 갖게 된다”며 “지원이 중복되거나 우선순위가 떨어지는 부문에 지원하거나 장기적으로 북한 자체를 바꿔 나갈 수 있는 활동이 아닌 아주 지엽적인 활동을 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전 교수는 “어떤 형태로든 남한의 관련 기관들이 함께 논의, 협력, 조정하는 일들이 필요하고, 대북 보건의료 협력활동을 조율하고 지원하는 기구가 필요하다”며 “궁극적으로 우리가 투입한 자원이 가장 효과적이면서 효율적으로 수용될 수 있도록 협력하고, 정보를 공유하고 의견을 모을 수 있는 기구가 작동하면 좋겠다”고 말했다.

'제1차 남북 보건복지 민관협력 포럼' 참석자들(사진=SPN)

■병원 밖 인프라 구축 필요성 강조… “시간이 지난 후 아무것도 남지 않는 경험해”

전 교수는 과거 1기 대북 보건의료 지원 사업의 경험을 통해 “병원 내부와 병원 밖의 상황이 모두 안정적으로 함께 발전해야만 비로소 주민들의 건강개선이 이뤄진다”는 교훈을 얻었다.

전 교수는 “병원을 지어주고, 의료 기자재나 약품을 공급하는 것만으로는 기대했던 북한 주민들의 건강 증진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며 “안정된 전기, 난방, 영양식사, 깨끗한 식수, 하수도 처리 능력, 안정된 소모품 공급과 수리, 관련 보건의료 인력 훈련, 재정적 지원이 보장되지 않으면 시간이 흐른 뒤 아무것도 남지 않는 경험을 했다”고 말했다.

이어 “병원 밖의 지역 사회가 좋은 상하수도 시설, 병원까지 올 수 있는 도로, 전화나 인터넷망, 제대로 된 보건행정 시스템 운영, 지역민 보건교육, 약품 유통구조, 안정된 인권보장 등을 갖추고 있어야 한다는 것도 알 수 있었다”고 덧붙였다.

■”인프라 개선은 ODA가 움직여야만 가능”… “北, 국제기준에 맞춰야 ODA 투입 가능”

전 교수는 “북한의 보건의료 체제가 제대로 만들어져서 북한의 모든 인민이 안전하고 건강하게 살 수 있게 만들려면 사회의 전반적인 인프라를 개조해야 한다”며 “이 일은 남한 정부나 여러 기관, 국내외 NGO들이 동원할 수 있는 돈으로는 할 수 없다. 결국 그 일이 진짜 이뤄지려면 양자간, 그리고 다자간 국제공적자금(세계은행, IMF, 아시아개발은행 등)이 움직여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그동안 북한은 자신들의 ‘특수성’을 내세워 ODA 활동에서 요구되는 여러 국제기준이나 평가와 상관없이 남측 기관에 자신들의 요구를 일방적으로 전달했고, 남측 기관들이 이러한 요구에 대응하는 방식으로 많은 일이 이뤄져 왔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이러한 ‘특별한 방식’으로는 ODA를 움직이지 못한다”며 “북한이 국제공적자금을 활용해 국가개발을 하려면 국제기준에 맞는 활동을 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남한은 북한이 국제적 기준을 맞추어 활동하는 훈련의 장으로서, 중간 이행기의 파트너로서 최적의 조건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제1차 남북 보건복지 민관협력 포럼' 패널들이 토론하는 모습(사진=SPN)

■ODA 체제하에서만 가능… “2005년 파리선언은 남북협력사업에서도 갖고 가야 할 원칙”

대한의사협회 남북협력위원회 위원장을 역임하고 있는 최재욱 고려대학교 의과대학 교수도 “북한이 갖는 정치적 헌법적 위치의 특수성으로 인해 ODA의 개발이론과 경험이 활용되지 못하고 있다”며 “그러한 상황에서 남북경협기금과 민간단체들의 주도하에 직접 지원하는 기존의 방식은 더는 지속가능성이 없어 보인다”고 지적했다.

최 교수는 “현시점에서 북한을 대상으로 하는 양자간 혹은 다자간 협력사업들과 투자재원의 확보와 집행은 ODA 체제하에서 가능하며 예외적일 수 없다”고 강조했다.

이어 “현재 북한은 사회경제분야 기초 인프라가 구축돼 있지 않으며 경제적인 최빈국이기 때문에 민간투자나 상업차관의 유입 가능성은 매우 낮다”고 지적했다.

또 “비핵화 완화와 대북제재 해제, 기초 인프라 구축과 IMF와 세계은행 가입에 따른 자금 도입이 가능하게 되기 전까지 5~10년간은 국제공적재원과 ODA 자금 유입이 현실적인 대안”이라고 덧붙였다.

최 교수는 “향후 남북 협력사업은 북한의 특수성을 절대적인 전제조건으로 상정하는 기존의 접근방식을 지양하고 ODA 국제적인 보편적 가치와 경험을 활용하는 것이 필요하다”며 “2005년 파리선언(원조 효과성을 위한 5가지 원칙)의 기본적인 가치와 원칙만 강조해도 고민하던 많은 부분을 기댈 수 있다”며 “남북협력 사업에서도 가지고 가야 할 원칙”이라고 강조했다.

2005년 파리선언은 원조의 효과성을 높이기 위해 △협력국의 주인의식(Ownership) △협력국과 공여국간 개발전략과 원조 방향의 일치(Alignment) △원조 중복 방지를 위한 공여국간 원조 조화(Harmonization) △성과지향적 관리(Management for Results) △상호 책임성(Mutual Accountability) 등을 제시했다.

■”北, 보수정부 협력사업에 강한 거부감 느껴”… “국제적 기준에 근거한 과정과 형식 필요”

최혜경 어린이어깨동부 사무총장은 대북협력민간단체협의회(북민협)와 북 민화협의 협의에서 느낀 점을 공유하며 “협력사업의 투명성에 대한 요구가 강화되고 있는 남측의 분위기를 고려할 때 북한을 강하게 설득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어 “과거 남측 보수정부에서 취약 계층, 열악한 어린이 등으로 왜곡시켰던 모자복지 사업, 취약계층 지원사업 등에 대한 강한 거부감이 존재한다”며 “과거 정부에서 서류를 과도하게 요청한 것에 대한 반작용으로 향후 분배 투명성이라는 이유로 북한을 신뢰하지 않은 어떠한 문서도 전달할 수 없다”는 북한의 입장을 설명했다.

그러면서 “협력사업에 대한 국제적 기준을 근거로 협력사업의 과정, 결과보고 등 남북이 합의할 수 있는 과정과 형식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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