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곤한 국가에서 성대한 고급 연회... 기이하다”...“환영사에 집중 안 한 기자 질책받기도"

북한 원산 갈마 공항에서 英스카이뉴스 아시아 특파원 톰 체셔(사진=스카이뉴스)

글-영국 스카이뉴스 소속 아시아 특파원 톰 체셔 / 사진-스카이뉴스 소속 기자 마이클 그린필드

북한 당국이 전례 없이 외신 기자단에게 취재접근권을 허용하긴 했지만, 여전히 기자들을 철저히 통제하려 한다.

우리 기자단이 알고 있는 사실은 우리가 향후 며칠간 적절한 시점에 (북한 원산에서) 풍계리 핵실험장으로 이동하게 된다는 것, 열차로 12시간을 달린 후 버스로 4시간을 더 간 후 2시간 동안 산을 타야 핵실험장에 갈 수 있다는 것이다.

풍계리 핵실험장은 현재도 가동되고 있는 세계 유일의 핵실험장이자, 북한이 6차례에 걸쳐 핵실험을 실행한 현장이다.

현재 북한에는 22명의 4개국 외신 기자단이 와 있다. 풍계리 취재를 위해 방북한 영국 언론사는 스카이뉴스가 유일하다. 외국인(외신 기자들)이 풍계리 핵실험장을 참관하는 것도 사상 최초다.

그러나 우리가 언제 풍계리 핵실험장을 참관하게 될지 우리는 모른다. 참관일은 23일부터 25일 사이 그 어느 때라도 될 수 있다.

또한, 우리가 정확히 무엇을 보게 될지도 모른다. 다만 북한 정권이 보여주길 원하는 것을 보게 될 것이라는 점은 확실하다. 북한 정부 측 감시요원(government minder)은 우리 곁에서 한시도 떨어지지 않는다.

공항에 도착하자 북한 당국이 위성전화와 방사선량계를 압수했다. 방사선량계는 방사선의 피폭 정도를 측정하고 그 정도가 안전한 수준인지를 알려주는 장치다.

우리는 거듭 항의했지만, 북한 관료들은 풍계리 핵실험장이 전적으로 안전해서 방사선량계가 필요 없다고 장담했다.

현재 우리 기자단이 머물고 있는 원산은 그 자체가 북한 정권의 대조적인 모습을 압축적으로 보여주는 전형이자, 북한의 현주소다.

항구도시인 원산은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포병훈련과 미사일 발사가 이루어졌던 군 기지다. 그랬던 원산이 이제 관광 중심지로 새롭게 브랜딩 되고 있다.

북한 원산 갈마공항에 도착한 승객들은 외신 기자단이 유일했다(사진=스카이뉴스)

온통 잘 닦인 대리석으로 장식된 원산 갈마 공항은 이제 막 완공됐다. 공항에 도착하면 비교적 상냥한 관료가 모든 짐을 하나하나 검사한다. 공항 안에는 키오스크, 신문가판대, 음료수 판매점이 있는데, 이러한 곳들에는 보라색 제복을 입은 여직원들이 말없이 인위적인 미소를 짓고 있다.

대개 공항 출발장에서 도로로 나갈 때면 반사적으로 소음과 아수라장이 펼쳐지리라 각오하기 마련이다. 그런데 이 공항에서는 아무 소리도 나지 않는다.

마이클 그린필드 기자가 원산에 진입하며 촬영한 전경(사진=스카이뉴스)

호텔로 향하는 도로를 달리며 원산을 둘러볼 수 있었다. 신속히 이동하기 전에 우측을 얼핏 보니 비좁은 노동자 막사 같은 것이 보였다.

북한 관료가 외신 기자단에게 환영사를 하면서 자국의 법을 준수해야 한다고 경고했다. 어떤 기자는 제대로 집중하지 않았다고 질책을 받기도 했다.

외신 기자단이 머무는 북한 호텔의 복도. 페인트칠을 한 지 얼마 안 된 듯하다(사진=스카이뉴스)

우리가 묵을 호텔은 고급 숙박시설로 건설됐다. 호텔에 들어서자 칠한 지 얼마 안 된 듯한 페인트 냄새가 코를 찔렀다. 

호텔 대형홀에서는 외신 기자단을 위한 연회가 열렸다(사진=스카이뉴스 영상 캡처 편집)

대형 홀에서는 기이한 연회가 벌어졌다.

가수 프랭크 시나트라의 마이웨이가 바이올린 연주곡 버전으로 흘러나왔다. 메뉴는 퐁듀와 스테이크뿐만 아니라 자라튀기와 샥스핀까지 없는 게 없었다. 음식들은 연이어 은 식기류에 담아져 나왔다.

기아와 빈곤으로 허덕였던, 그리고 지금도 허덕이고 있는 국가에서 참으로 혼란스러운 경험이었다.

그러나 김정은 위원장이 말하는 경제 구상이 바로 이런 모습이다. 김 위원장은 2013년에 채택된 ‘병진 노선'으로 핵무기를 개발했으니 이제 경제 건설에 집중하겠다고 천명했다.

또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6월12일 북미정상회담이 잘 진행될 경우 약속한다는 북한의 개방과 번영을 담은 구상이기도 하다.

이러한 낙관론은 핵무기와 호전성을 포기하는 구상에 대한 김정은 정권의 깊은 의구심으로 희석됐다(tempered).

북한이 진정으로 원하는 미래 구상이 무엇인가를 선택하는 고투가 이곳 원산에서 벌어지고 있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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